마라톤 급수대에서 달리면서 자원봉사가 내민 종이컵을 받아 드는 아마추어 러너

마라톤 급수대, 매번 마셔야 할까?

첫 급수대에서 종이컵을 받아 들고 반은 흘리고 반은 사레들린 적 있으시죠. 그러고 나면 다음 급수대가 보일 때마다 같은 고민이 옵니다. 매번 마셔야 하나, 그냥 지나쳐도 되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목이 마를 때 마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정해진 양을 꼬박꼬박 채운 쪽이 더 빨랐다는 자료는 없고, 오히려 다 마시려다 탈이 난 기록은 남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근거를 먼저 보고, 급수대에서 속도를 덜 잃는 순서 3가지와 멈춰야 하는 신호까지 정리했습니다.

갈증 날 때 마셔도 기록은 밀리지 않습니다

가장 불안한 지점부터 답하겠습니다. 덜 마시면 후반에 무너질까 하는 걱정입니다.

2019년 『Sports Medicine』에 실린 메타분석이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같은 사람이 두 조건을 번갈아 수행한 시험 7편, 참가자 82명을 모은 자료입니다. 한쪽은 갈증이 날 때만 마셨고, 다른 쪽은 시간마다 정해진 양을 마셨습니다.

마신 양은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습니다. 갈증대로 마신 쪽이 시간당 505mL, 정해놓고 마신 쪽이 시간당 1,073mL였습니다. 끝났을 때 체중은 각각 2.1%와 1.0% 줄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적은 갈증대로 마신 쪽이 0.98% 나았고, 저자들은 이 차이를 사소한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물을 두 배 더 마신다고 더 빨라지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 시험들은 1~2시간짜리 운동이었고 평균 기온이 28도였습니다. 네 시간, 다섯 시간을 뛰는 풀코스에 숫자를 그대로 대입하기는 어렵습니다. 방향으로 읽으시는 편이 맞습니다.

실제 대회에서 잰 자료도 같은 쪽을 가리킵니다. 2011년 『British Journal of Sports Medicine』에 실린 조사는 마라톤 완주자 643명의 몸무게를 출발 직전과 결승선 직후에 쟀습니다. 평균 2.3%가 줄었는데, 기록별로 나눠 보니 3시간 안에 들어온 사람이 3.1%로 가장 많이 줄었고 4시간을 넘긴 사람이 1.8%로 가장 적게 줄었습니다.

체중을 덜 잃은 사람이 더 느렸다는 말입니다. 물론 관찰한 자료라 덜 마셔서 빨라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빠른 사람은 땀을 더 흘리고 마실 틈도 적으니까요. 다만 몸무게를 지키는 것이 좋은 기록의 조건이라는 통념과는 반대 방향입니다.

정리 — 정해진 양을 채우는 쪽이 더 빠르지 않았습니다. 갈증을 기준으로 삼으셔도 됩니다.

급수대에서 어긋나는 것은 대개 넷 중 하나입니다

마실지 말지보다 실제로 문제가 되는 건 따로 있습니다. 대회에서 처음 종이컵을 받아본 분들이 겪는 장면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컵 입구가 입보다 넓습니다

대회용 종이컵은 입구가 동전보다 훨씬 넓습니다. 그 상태로 기울이면 물이 한번에 쌓이듯 내려오고, 대부분은 턱과 가슴으로 갑니다. 재료보다 모양의 문제입니다.

숨을 고르기 전에 삼킵니다

뛰는 중에는 호흡이 걸음과 묶여 있습니다. 그 리듬 중간에 삼키려 들면 기도가 제때 닫히지 않아 사레가 들립니다. 기침이 터지면 그 자리에서 몇십 초를 버리게 됩니다.

완전히 멈춰 서서 리듬을 놓칩니다

멈춰 서는 것 자체는 나쁜 선택이 아닙니다. 문제는 다시 출발할 때 생깁니다. 멈춘 다리를 원래 페이스로 올리려고 하다가 과하게 밀어붙이고, 그 몇 백 미터가 뒤에 그대로 남습니다.

초반 급수대를 그냥 지나칩니다

아직 목이 안 마르니까 지나치고, 목이 타고 나서 몰아서 마시게 됩니다. 한번에 많이 들어간 물은 위에 머물러 울렁이고, 그 느낌이 다시 급수를 거르게 만듭니다. 갈증은 몰아서 채우기 어렵습니다.

정리 — 컵 모양, 삼키는 타이밍, 다시 출발할 때의 과속, 그리고 몰아 마시기입니다.

덜 마셔서와 너무 많이 마셔서는 증상이 비슷합니다

여기가 급수가 어려운 진짜 이유입니다. 어지럽고 메스껍고 머리가 아픈 것은 물이 모자라도, 물이 너무 많아도 나타납니다. 그런데 둘의 대처법은 정반대입니다.

물을 너무 많이 마셨을 때 오는 쪽을 운동유발 저나트륨혈증이라고 부릅니다. 피 속 염분이 들어온 물에 희석돼 농도가 낮아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드문 일이 아닙니다. 2011년 『British Journal of Sports Medicine』에 실린 조사는 런던마라톤 참가자 88명의 피를 출발 전과 결승 뒤에 봤습니다. 이 중 11명, 12.5%가 증상 없는 저나트륨혈증이었습니다. 서늘한 날씨에 치른 대회였고, 이들은 다른 참가자보다 물을 더 많이 마셨고 체중이 늘어 있었습니다.

다만 이 조사에서 11명 중 4명은 체중이 오히려 줄어 있었습니다. 체중만으로 걸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니, 이 숫자를 자가 진단 도구로 쓰시면 안 됩니다. 참가자 88명으로 큰 조사도 아닙니다.

2022년 『Journal of Clinical Medicine』에 실린 고찰은 관련 논문 135편을 모아 본 뒤, 증상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를 합쳐 유병률을 7~15%로 정리했습니다. 높은 기온과 여성을 위험 요인으로 꼽습니다.

대회 중에 피를 뽑을 수는 없으니, 눈으로 확인 가능한 것을 기준으로 잡으셔야 합니다. 아래 3가지는 연구가 정해준 기준이 아니라, 앞의 자료에서 드러난 특징을 현장에서 쓸 수 있게 옮긴 판단 기준입니다.

모자람갈증대로과함입이 마름소변이 진함마르면 마시고아니면 지나감배가 철렁손이 부음증상은 양끝이 비슷합니다oneul.run

물이 모자란 신호 — 입과 혀가 마르고, 소변이 진한 노랑이고, 땀이 어느 순간부터 덜 난다면 덜 마신 쪽입니다. 다음 급수대에서 한 컵 더 드세요.

물이 너무 많다는 신호 — 배에서 물소리가 철렁거리고, 손가락이 부어 반지나 시계가 조이고, 목이 마르지 않은데도 계속 마시고 있다면 반대쪽입니다. 그럴 땐 다음 급수대를 건너뛰셔도 됩니다.

둘 중 하나도 분명하지 않을 때 — 기준은 하나입니다. 목이 마르면 마시고, 안 마르면 입만 헹구고 지나가시면 됩니다. 이게 앞에서 본 메타분석이 쓴 방법과 같습니다.

정리 — 증상이 겹치니 갈증을 기준으로 잡으세요. 많이 마셔서 생기는 문제도 드물지 않습니다.

출발 전 수분과 음식을 어떻게 맞출지는 대회 당일 아침 식사, 출발 3시간 전에 끝냅니다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속도를 덜 잃고 통과하는 순서 3가지

연습 없이도 당일 바로 될 것들로 추렸습니다. 그래도 한 번은 연습 주행에서 해보고 가시는 편이 좋습니다.

먼저 테이블 뒤쪽을 고릅니다

급수대 테이블은 길게 늘어서 있고, 사람은 언제나 앞쪽에 몰립니다. 붐비는 앞쪽을 지나 뒤쪽 끝으로 가면 손을 비집어 넣지 않고도 한 컵을 집을 수 있습니다. 물과 이온음료를 나눠 놓는 대회도 있으니, 접근하면서 안내판을 먼저 보세요.

그다음 컵 입구를 접습니다

컵을 집자마자 엄지와 검지로 윗부분을 눌러 반달 모양으로 만듭니다. 입구가 좁아지면 물이 쌓이듯 내려오지 않고 좌우로 흔들려도 덜 흘립니다. 이 동작 하나로 사레와 범벅이 대부분 해결됩니다.

그대로접은 뒤한꺼번에 쏟아짐한 모금씩oneul.run

마지막에 두세 걸음 늦춰 나눠 마십니다

완전히 멈추는 대신 걷는 속도로 두세 걸음만 늦춥니다. 그리고 한번에 들이켜지 말고 숨을 내쉬는 박자에 맞춰 두 모금으로 나눕니다. 다 마실 필요는 없습니다. 남은 건 버리는 곳에 넘기면 됩니다.

물과 이온음료 중 무엇을 고를지는 앞서 본 자료들로 답하기 어렵습니다. 그 메타분석은 두 조건의 전해질을 같게 맞춘 상태에서 마신 양만 비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온음료에는 당과 염분이 들어 있으니, 긴 거리에서 물만 계속 마시는 것보다는 섞어 잡는 편이 무난합니다.

급수대 간격은 국제 경기 규칙상 마라톤에서 첫 5km 이후 5km마다입니다. 종목별로는 이렇게 잡으시면 됩니다.

10km
갈증이 없으면 그냥 지나셔도 됩니다. 한 시간 안쪽에 끝나는 거리입니다.

하프
중반 이후 갈증이 오면 한 컵씩. 초반부터 꼬박꼬박 마실 이유는 없습니다.

풀코스
갈증을 기준으로 하되, 후반에는 이온음료를 섞습니다. 더운 날은 간격이 짧아집니다.

정리 — 뒤쪽에서 집고, 컵을 접고, 두세 걸음 늦춰 나눠 마시면 됩니다.

이럴 땐 멈추고 의무실로 가세요

먼저 빈도부터 말씀드리면, 심각한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2019년 『PLoS ONE』에 실린 조사는 스웨덴 예테보리 하프마라톤의 5년치 기록을 봤습니다. 출발자 230,501명 중 응급 처치가 필요했던 쓰러짐은 1,000명당 1.53건이었고, 이 기간 동안 저나트륨혈증 사례는 없었습니다.

다만 이건 하프 자료입니다. 거리가 길어지고 시간이 늘어날수록 마실 기회도 늘어나니, 풀코스에 그대로 대입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래 중 하나라도 나타나면 기록을 포기하고 의료진을 찾으셔야 합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토할 것 같을 때 — 물을 더 마셔서 해결하려 하시면 안 됩니다. 저나트륨혈증이라면 상태가 더 나빠집니다.

손가락과 얼굴이 부었을 때 — 반지나 시계가 갑자기 조이면 몸에 물이 과하게 남아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말이 어눌해지거나 지금 어디인지 헷갈릴 때 — 가장 위험한 신호입니다. 본인은 알아차리기 어려우니, 동행이 있다면 서로 말을 걸어보세요.

달리는데 땀이 그치고 소름이 돋을 때 — 수분 문제보다 열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늘로 옮기고 도움을 청하셔야 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2001년 『The Journal of Emergency Medicine』에 실린 보고는 마라톤 뒤 응급실을 찾은 저나트륨혈증 환자 26명을 봤습니다. 이들은 여성이 더 많았고, 소염진통제를 복용한 경우가 많았으며, 완주 시간이 느렸고, 대회 중 “가능한 한 많이” 마셨다고 답했습니다.

응급실에 온 사람만 모은 자료라 일반 참가자의 비율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대회 전후에 진통제를 미리 먹어두는 습관은 피하시는 편이 낫습니다. 아프면 먹는 것과, 아프기 전에 미리 먹는 것은 다릅니다.

정리 — 머리가 아프고 붓고 헷갈리면 물을 더 마실 때가 아니라 멈출 때입니다.

후반에 무너졌을 때 어떻게 버틸지는 마라톤 걷기 전략, 걸으면 기록이 밀릴까요에 정리돼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급수대에서 꼭 멈춰야 하나요

아닙니다. 다만 마시는 데 자신이 없으시면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문제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다시 출발할 때 밀린 시간을 만회하려고 과하게 올리는 것입니다. 멈추셨다면 원래 페이스로만 돌아가세요.

첫 급수대부터 마셔야 하나요

목이 마르지 않으면 건너뛰셔도 됩니다. 다만 더운 날이라면 입을 헹구는 정도로 한 모금 적셔두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중요한 건 몰아서 마시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물병을 직접 들고 뛰어도 되나요

대회 규정에 따라 다르니 안내문을 확인하셔야 합니다. 허용되더라도 대회 당일에 처음 써보는 건 권하지 않습니다. 한쪽 손에 무게가 실리면 어깨가 틀어지고, 그 자세가 수십 킬로미터 누적됩니다.

물과 이온음료 중 무엇을 마시나요

한 시간 안쪽이면 물로 충분합니다. 그보다 길어지면 이온음료를 섞으세요. 당과 염분이 들어 있어 물만 계속 마시는 것보다 낫습니다. 다만 연습 주행에서 한번도 안 마셔본 제품이라면 대회 당일이 처음이 되지 않게 하세요.

10km 대회에도 급수가 필요한가요

기온이 높지 않다면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한 시간 안쪽이면 끝나는 거리라 출발 전에 마신 물로 대체로 버티게 됩니다. 목이 마르면 마시면 될 뿐입니다.

급수대에서 젤을 먹어도 되나요

젤을 먹는다면 급수대에 맞춰 먹는 편이 낫습니다. 농축된 당이라 물 없이 삼키면 속이 거부하기 쉬우니까요. 이온음료와 같이 먹지 않고 물과 짝짓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대회 전날 밤에 무엇을 챙길지는 마라톤 대회 준비물 체크리스트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참고한 자료

아래 자료는 PubMed에서 찾은 원문을 직접 확인해 정리한 것입니다. 표본 수와 연구 종류를 함께 적어 두었으니 근거의 무게를 짐작하실 수 있습니다.
Goulet EDB, Hoffman MD. Impact of Ad Libitum Versus Programmed Drinking on Endurance Performance: A Systematic Review with Meta-Analysis. Sports Medicine, 2019; 49(2): 221-232 — 교차설계 시험 7편, 참가자 82명 메타분석. https://doi.org/10.1007/s40279-018-01051-z
Zouhal H 외. Inverse relationship between percentage body weight change and finishing time in 643 forty-two-kilometre marathon runners. British Journal of Sports Medicine, 2011; 45(14): 1101-1105 — 마라톤 완주자 643명 관찰 연구. https://doi.org/10.1136/bjsm.2010.074641
Kipps C, Sharma S, Tunstall Pedoe D. The incidence of exercise-associated hyponatraemia in the London marathon. British Journal of Sports Medicine, 2011; 45(1): 14-19 — 자원자 88명 출발 전후 혈액 검사. https://doi.org/10.1136/bjsm.2009.059535
Klingert M 외. Exercise-Associated Hyponatremia in Marathon Runners. Journal of Clinical Medicine, 2022; 11(22): 6775 — 논문 135편을 모은 서술적 고찰. https://doi.org/10.3390/jcm11226775
Davis DP 외. Exercise-associated hyponatremia in marathon runners: a two-year experience. The Journal of Emergency Medicine, 2001; 21(1): 47-57 — 응급실 내원 환자 26명 후향적 분석. https://doi.org/10.1016/s0736-4679(01)00320-1
Lüning H 외. Incidence and characteristics of severe exercise-associated collapse at the world’s largest half-marathon. PLoS ONE, 2019; 14(6): e0217465 — 출발자 230,501명 5년치 후향적 조사.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217465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대회 중 이상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멈추고 의료진의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